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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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4년  07월호 외로움에 대한 4주 시리즈 설교 교회, 외로운 이들을 돌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대가족 사회였다. 그런데 오늘날은 더 이상 대가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 의하면 한국 가족의 보편적 모습은 이제 소가족도 아닌 ‘나노가족’인데 이는 혼자 사는 가구와 설사 함께 산다고 해도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지 않는 가족을 뜻하는 말이다.1 나노가족의 대표적 형태인 1인 가구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는데 2023년 12월 행정안전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이 41.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증가에 발맞추어 식사, 음주, 여행 등 혼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혼족’의 숫자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외로워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의 경우 외로움을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2018년 세계 최초로 고독부 장관을 임명해 ‘연결된 사회’ 5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고독부 장관을 임명해야 할 필요성은 영국보다 한국이 더 크다. 왜냐하면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영국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OECD의 〈How’s Life? 2020〉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OECD 주요 37개국 중 그리스에 이어 최상위권인 2위에 랭크됐다.2

“나홀로 세상에?”를 주제로 한 4주 시리즈 설교 구성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한국 사회의 이러한 상황은 교회 안팎에 외로운 사람들이 많고 외로움의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말이다. 존 스토트의 말처럼 설교가 하나님 말씀과 오늘날의 상황을 연결하는 다리라면 설교자는 반드시 외로움을 주제로 설교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외로움을 주제로 한 4주간의 시리즈 설교를 제안하면서 그 개요를 소개하려 한다. 시리즈 전체의 제목은 유명 영화제목 “나 홀로 집에”를 패러디해서 “나 홀로 세상에?”로 정했다. 

1주차: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창 2:8-3:13)

 본문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후략)

 서론
1.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근원이 있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근본 출발점은 어디일까? 
2. 사람의 시작을 묘사하고 있는 창세기 2-3장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본론 

1.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는 원래 외로움이 없었다

1)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제6일에 창조의 꽃으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셨다. 6일째 창조를 줌인한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은 ‘기쁨’이라는 뜻의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그 동산에 두셨다. 처음에는 남자 혼자 만드셨다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셨고 그의 배필 하와를 만들어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게 하셨다. 

창세기 2:23은 이 연합에 대한 아담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 준다. 두 사람은 벌거벗어도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을 정도로 친밀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기쁨과 축복의 에덴동산에서 누구도 외롭지 않았다.

2) 우리는 외로울 때 하나님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외로움을 만드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을 방지하시기 위해 그의 짝 하와를 만드셨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가정 제도를 설립하시고 친밀한 공동체를 만드셨다. 우리는 외로울 때 하나님을 탓하기보다 그분께 나아가며 그분이 만드신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 

2.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서 외로움이 시작된다

1)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면서 모든 것을 허용하셨지만 한 가지를 금하셨는데 그것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주인을 인정하며 살아가라는 명령이었다. 베스터만의 설명처럼 무언가를 앗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때 인간의 잠재력을 더 크게 하는 명령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뱀의 모습으로 접근한 사탄의 꾐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기로 선택했다. 그것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죄이자 반역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외로움이라는 저주를 몰고 왔다. 창세기 3:7에 의하면 그들은 서로에게 수치심을 느껴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고, 8절에 의하면 하나님에게서도 숨어 버린다. 죄악은 이처럼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이 인간을 근원적인 외로움에 빠뜨렸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문제를 만든다. 우리의 영혼에 구멍이 뚫리고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온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가운데 그분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해야 한다. 그럴 때 그분이 나의 빈 곳을 채우시고 나를 참된 친밀함이 있는 기쁨의 동산으로 이끄신다. 

 결론 
외로움은 하나님이 만드시거나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과 반역을 일삼으며 비롯된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으로써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나 참된 관계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2주차: 외로움에 대한 근원적 치료(요 4:3-30)

 본문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후략)

 서론
1. 치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증상의 완화와 근원적인 치료다. 예를 들어 암에 걸려 아플 때 진통제를 먹는 것은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2.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증상만이 아니라 근원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 
3. 어떻게 하면 외로움에 대한 근원적 치료를 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원한다. 

 본론 

1. 우리는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1)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여인은 사마리아에 사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사람이 없는 정오에 물을 길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물을 길러 나왔다는 것은 그녀에게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말이고 그것은 그녀가 외롭다는 것을 함의한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시면서 남편을 데려 오라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이 여인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어떤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남자의 품속을 전전했지만,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만약 그녀의 문제가 해결됐다면 5번이나 이혼을 당하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났을 리 없다.

2) 우리 또한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어떤 사람은 이 여인처럼 이성을 만나고 또 결혼도 한다. 그러나 결혼이 외로움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신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보고 어떤 사람은 일에 몰입한다. 어떤 사람은 소셜 미디어에 계속해서 접속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내면의 궁극적인 외로움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증상만을 살짝 완화시켜 주는 치료와도 같다. 

2. 외로움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 치료는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1) 여인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에 대해 알고 계셨다. 이 여인이 얼마나 외로운지, 그리고 그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지 아셨다. 그래서 그분은 이 여인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 당시 유대인들은 피하는 사마리아를 일부러 통과하셨다. 원문을 보면 4절에서 영어의 must에 해당하는 조동사 (데이)를 사용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하셔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그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편견을 뛰어넘어 여인에게 다가가셨고 그녀의 문제를 깨닫게 하신 후에 자신을 메시아로 계시하셨다. 그것은 ‘내가 너와 관계 맺기 원하고 너의 삶 가운데 동행하겠다’라는 말씀과 같다. 예수님을 만난 후 여인은 변화됐다. 사람을 피하던 그녀가 사람 속으로 들어가 그리스도를 전했다. 목이 말라 물을 길러 온 여인이 물동이를 버리고 더 큰 사명을 위해 동네로 향했다. 

2) 예수님을 개인의 주님과 구주로, 개인의 왕으로 만나게 될 때 외로움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된다. 그분은 우리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치료제나 장난감의 무익함을 깨닫게 하신 후 말씀하신다. “내가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줄 것이다. 내가 너의 타는듯한 갈증, 상황마다 바뀌는 외로움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내가 부어 주겠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마음에 영접하고 그분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섬기며 그분과 함께 동행할 때 근원적인 외로움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결론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종류의 외로움을 지니고 산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름의 방안을 강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치 진통제와 같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그분을 전인격적으로 만나는 것만이 외로움의 근원적 치료책이다. 외로울 때 우리는 모든 문제의 답이자 인생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3주차: 외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 교회 공동체(행 2:42-47)

 본문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서론
1.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는 바로 친밀한 관계다.
2. 하나님은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해 교회를 만드셨다. 지상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처음 모습을 기록한 사도행전 2:42-47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외로움이라는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이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교회가 실제적으로 외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본론

1. 우리는 교회를 영적 가족으로 인식해야 한다 

1) 누가는 사도행전 2:44-45에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했다. 함께 거하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재산과 소유를 필요대로 나눠 주는 것은 가족의 특징이다. 성령께서는 이 놀라운 현상을 통해 교회가 영적 가족임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2) 교회는 영적 가족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19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여러분은 …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새번역)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예수 안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모이기에 힘쓰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외로움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훌륭한 대안이 된다. 

2. 우리는 서로 교제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1)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는 일뿐 아니라 교제하는 일에 헌신했다(42절). 그들은 그저 가볍게 자기 편의에 따라 교류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고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었다(46절).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누가는 그들이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고 했다. 그 결과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교회에 더해지는 것이었다(47절). 

2)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크리스천 교제는 그냥 어울려 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동참하고 친밀한 사귐을 추구하며 공동체로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교제다.4 우리는 이 일에 헌신해야 한다.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 힘써 참여해야 한다. 그때 교회는 외로움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으로서 기능한다.  
 결론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를 아시고 외로움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교회를 만드셨다. 교회를 영적 가족으로 인식하고 서로 교제하는 일에 힘쓸 때 우리는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4주차: 사역자가 외로움에 처할 때(딤후 4:9-18)

 본문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후략)

 서론 
1. 사역을 하다가 외로움을 느끼거나 외로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2. 늙고 병약한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쓴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장을 보며 사역자가 외로움에 처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를 배우도록 하자. 

 본론 

1. 적극적으로 동역자와의 교제를 구해야 한다 
1) 바울은 데마와 그레스게와 디도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을 때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 속히 오라고 청했다. 그는 또한 마가도 함께 데리고 올 것을 구했다.

2) 외로움이 우리를 엄습할 때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혼자만의 세계로 숨어들지 말고 나와 교제할 수 있는 동역자나 믿음의 친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주도권을 쥐고 한번 만나 밥이라도 먹자고, 차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요청해야 한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교제를 구하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외로움 퇴치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우리는 외로움을 건설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1) 바울은 13절에서 디모데에게 올 때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글 성경을 보면 한 종류의 책만 말하는 것 같지만 크레이그 키너의 지적처럼 바울은 두루마리 책들과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책, 두 종류의 책을 부탁했다.5 앞의 책들은 일반 서책일 수 있고 뒤의 가죽 종이책은 구약성경의 일부일 수 있다. 아무튼 바울은 감옥의 그 외로운 공간과 시간을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 채우려 했다.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의 순간조차 자신의 영적·지적 성장을 위해 사용하려 했다.

2) 외로움이 밀려올 때 사역자들은 그 외로움의 순간을 이해인 시인의 말처럼 “더 높고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순례의 과정”으로 사용해야 한다.  

3. 영적 민감성을 갖고 주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1) 바울은 처음 변론 때 모든 사람이 다 자기를 버렸지만, 주님이 자신의 곁에 서서 힘을 주셨다고 했다(16-17절). 그 주님의 임재가 사람들의 배신과 부재로 인한 외로움을 이기게 했다.

2) 사역 가운데 사람들이 우리를 떠날 수 있다. 가장 믿었던 동역자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영적 민감성을 갖고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사람은 떠나도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그 임재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적 상황으로 인한 외로움에서 우리를 건질 수 있다. 

 결론 
사역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떠나거나 오해와 배신을 경험할 수 있다. 나만 혼자인가 싶은 마음에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교제를 구하고 외로움의 상황을 건설적으로 활용하며 무엇보다 주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활력을 얻고 외로움이라는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 주님을 섬길 수 있다.   



1)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23》(미래의 창, 2022), p. 39.
2)    사례 뉴스(http://www.casenews.co.kr)
3)    Allen P. Ross, Creation and Blessing (Baker, 1988), p. 125.
4)    발터 바우어, 《바우어 헬라어 사전》, 이정의 옮김(생명의말씀사, 2017), p. 838.
5)    크레이그 키너, 《IVP 성경 배경 주석 신약》, 정옥배 옮김(IVP, 1998), p. 731.

이재기 사랑빚는교회 담임목사. 리버티침례신학대학원(D.Min.). 저서로 《변화하는 세상을 위한 강해 설교》, 《리셋 느헤미야와 함께 다시 세우라》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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